사단법인 한국기록전문가협회

Korea Association of Records Managers and Archivists

NOTICE/아키비스트의 눈

[아키비스트의 눈] 나는 때로 울컥할 때가 있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3. 31. 20:43


나는 때로 울컥할 때가 있다!



2012년 3월 31일 취우(醉雨)


나는 수업 중에 울컥할 때가 있다. 대통령기록관 시스템 부분을 언급할 때가 그렇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전자기록물 이관을 위해 대통령기록관시스템(PAMS, Presidential Archives Management System)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사업에 자문으로 참여하였다. 그 때 어마어마한(!) 양의 전자기록물, 다양한 유형의 전자기록물에 압도된 프로젝트팀은 이 소중한 기록물들을 어찌하면 문제없이 잘 “이관”할 수 있을까에 모든 관심이 쏠려있었다. 대통령기록관이나 프로젝트팀이나 자문에 나선 사람들이나 모두 노심초사, 고군분투... 대통령기록의 무사 이관에 지혜를 보태려 무진 애썼다. 퇴임 전후의 짧은 시간 동안 대량의 기록 이관을 마쳐야 한다는 생각, 전자기록은 가능하면 초기에 안정적인 보존포맷으로 변환해야 한다는 생각, 지정기록과 비밀기록의 보안에 유의해야 한다는 생각, 여러 출처에서 모인 기록에 통합적인 분류와 표준적인 메타데이터를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 등, 우리가 처리해야 할 일들은 복잡다단했다. 바쁘고 부산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비서들의 업무관리를 위해 이지원시스템을 만들었다. 특허를 출원할 정도로 사적으로도 공을 많이 들인 시스템이었다. 기록관리시스템도 만들었다. 되도록 많은 기록을 공개하도록 체계를 갖추었다. 이지원시스템과 기록관리시스템에는 엄청난 양의 노무현대통령 기록물이 채곡채곡 쌓여갔다. 퇴임을 6개월 쯤 앞둔 즈음, 노 대통령은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 자신의 기록을 열람,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검토했다. 그런데,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보고를 받았다!!! 예산 등 여러 문제로 대통령기록관시스템의 서비스 모듈은 나중에 만들어질 예정이라는 보고였다. 퇴임 후 최소한 몇 개월은 성남 대통령기록관으로 직접 방문하여 열람하던가, 아니면 서비스가 될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거였다..... 이로인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기록관리계의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소위 ‘노무현 기록 유출 사건’은 왜 벌어졌을까? 퇴임 후 계획한 여러 일들을 추진하기 위해 자신의 기록물을 열람하는 것이 절실했던 그는 결국 기록물 사본을 봉하마을로 가져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만약, 대통령기록관시스템이 처음부터 서비스 기능을 갖추고 있어 봉하마을에서도 기록물 열람이 가능했더라면 이 일은 역사에 기록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여기가 바로 내가 울컥하는 대목이다. 왜냐구? 대통령기록의 첫 번째 이용자는 바로 대통령 자신이다. 그런데, 시스템 전공자라는 나는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이용자가 무엇을 원하는 지 헤아리지도 못한 채 2007년 대통령기록관시스템의 자문을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2007년의 우리는 대통령기록의 일차적 이용자인 전임대통령의 요구에 천착하기 보다 엄청난 양의 디지털 기록물 이관이라는 기록관리적 빅 이슈 자체에 관심이 쏠려있었던 것같다. 각종 장기보존을 위한 조치, 최고의 보안 조치를 취하는 것에 골몰해 있는 동안 정작 그것을 생산한 전임대통령의 절실한 요구는 이미 뒷전으로 미뤄져 있었던 것이다. 물론, 당시 상황적 핑계는 있다. 대통령기록관시스템 구축 일정이 많이 늦춰진데다 예산확보는 어려웠고, 사상 초유의 대량 디지털 기록 이관을 지켜보는 여러 시선들이 있었다. 시스템의 구축 우선순위가 어디에 두어질 것인가...... 결국 대통령기록관 입장에서는 생애주기의 첫 단계인 이관모듈을 잘 만드는 것에 초점이 모아졌던 것이다. 

노무현대통령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대통령기록을 남긴 분이셨지만, 이용자 서비스에서는 홀대를 받았고 결국은 기록유출자로 낙인찍힌 채로 유명을 달리하셨다. 단 한 건의 오차도 없이 자신의 모든 기록을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했음이 나중에 밝혀졌으나 왜 그 분이 기록물을 봉하마을에 가져가야만 했는지 그 직접적 원인의 일단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가슴이 아플 뿐이다. 

되짚어보자면.... 이지원시스템 복제본 만들어오고, 기록관리시스템 복제본 만들어오고, 한시적인 대통령직속위원회 전자문서시스템 통째로 반입하는 것만으로도 이관의 첫 단계를 마무리할 수도 있었다. 검수, 정리, 기술, 재분류, 보존포맷적용.... 등등의 많은 절차들은 그 이후에 ‘단계적으로 천천히’해도 될 일이었다. 그보다는 우선 보안이 잘되는 격리 네트워크 망으로 성남과 봉하를 연결하고, 시스템을 작동시켜 대통령 재임시에 쓰던 인터페이스 그대로 기록을 이용하도록 조치할 수 있었다. 서비스를 하면서 대통령기록관시스템을 구축하고 기록을 마이그레이션해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때의 우리 인식은 달랐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령에 따른 첫 이관을 제대로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있었고, 디지털 기록은 도무지 믿을 수 없을 만큼 취약한 존재로 인식되었고, 따라서 하루라도 당겨서 완벽한 통제 시스템 속에 밀어 넣어야만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었던 거 같다. 

기록관리의 원칙은 대체 뭘까? 당시 우리는 왜 전자기록의 진본성과 장기보존에 급급하여 최고 이용자의 이용가능성을 그리 소홀히 대했던가? 기록이 이용자를 잃고 어떻게 의미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2007년과 기록물 유출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자책감에 울컥 눈물이 솟는다.

올 해 이명박 대통령은 5년 전의 노무현 대통령처럼 자신의 기록물을 총정리하여 이관계획을 세울 것이다. 5년 전, 300만 건이 넘는 기록물을 이관한 노무현 대통령을 기억하는 나는 이명박 대통령의 기록물은 얼마나 될지 몹시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