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인칼럼' 3월의 지정주제는 ‘기록관리와 여성’입니다. 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기록관리와 여성의 관계, 기록관리계의 여초현상 등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
들어도 들어도 모자란 목소리
정인(定印)
불이 켜졌다.
97년 어느 날, 혜화동 작은 소극장은 흐느끼는 소리로 가득 찼다. 나는 눈물이 멈추질 않아 고개만 치켜들고 있었다. 일행들 중 누구 하나도 먼저 일어나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일본군 위안부의 ‘낮은 목소리’를 처음 듣던 그 날을 그렇게 기억한다. 얼마 전 그들 중 한 분인 이용수 할머니가 한 정당의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날이 떠올랐다.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는 일본 정부와 무기력하기만 한 한국 정부를 더 이상 믿지 못하고 팔을 걷고 나선 것이다.
‘한을 풀기 위해’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선언은 마치 “나는 여전히 여기서 살아있소”라는 존엄한 한 인간의 존재를 선언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제서야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 일을 오래된 역사처럼 안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 동안 많은 증언 기록이 쌓였고, 역사관도, 추모관도 세워졌으며 새로운 기록들도 발굴이 됐다. 여기저기서 열리는 전시회는 사람들에게 위안부 할머니의 아픔을 느끼게 했고, 인터넷과 책을 통해 어린아이들도 이제는 그 이야기를 안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을 오랜 흑백 사진첩을 열어보듯이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할머니들은 이번 주에도 수요일이면 상처난 몸을 이끌고 일본 대사관 앞에 설 것인데도.
91년 처음으로 세상에 목소리를 냈던 200여 명의 할머니들은 어느새 6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한 분 한 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면 손가락 사이로 자꾸 새어나오는 모래알이 쿵하고 가슴에 떨어질 것만 같다. 결국 빈주먹만을 움켜쥐게 될 때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란 사실을 잘 안다. 할머니들의 상처는 치유되지 못한 채 남을 것이고, 우리는 그 분들의 목소리를 더 이상 받아 적지 못하게 될 것이다.
기억하자고 이야기하기에는 이른 일이 있다. 우리는 여전히 할머니의 따뜻한 손을 잡을 수 있다. 작년 어느 시민단체가 지자체에게 할머니들의 기록을 더 많이 남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남겨주지 않는 목소리들이 있다. 강한 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약하고 상처받은 자의 그것은 더 남기기 어렵기 마련이다.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같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아직도 들어야 할 목소리는 남아있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기록을 남기는 사람은 그 목소리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할머니를 기억 속에 가둬 두었던 내 모습을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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