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관리단체협의회 3차 성명서]
기록관리 전문성이 배제된
행정 편의주의적이고 독단적인 공공기록물법 개정을 반대한다.
지난 12월 26일 정부는 국회에 공공기록물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우리 기록학계와 기록전문가 단체들은 정부 입법예고 기간부터 입법안에 대해 ‘소통 부재,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인식하고 전문성을 기초로 하여 그 내용을 비판하는 반대의견을 제출했다. 그러나 국가기록원은 충분한 설명 없이 법률 개정을 추진하였고, 법제처 심의 과정에서도 주요 문제점을 개선하거나 삭제하지 않은 채 최종 개정안이 도출되었다. 기록관리단체협의회는 국회에 제출된 공공기록물법 개정안(이하 개정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다시 한번 천명하면서 그 주요 이유를 밝힌다.
1. 법률의 목적과 적용 범위에 실질적 변화가 없고 행정 낭비만 초래하는 법명 개정에 반대한다.
개정안은 목적 조항(안 제1조)에서 기록물의 “안전한 보존”을 “안전하고 효율적인 보존”으로 개정하려 하지만 보존 업무의 축소로 귀결될 소지가 크다. 또한 “효율적 활용”을 “국민적 활용ㆍ체험 증진”으로 개정하려 한다. 활용의 확대가 아니라 말 잔치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법률의 목적에 변화와 발전이 없고 오히려 보존을 경시하여 공공기록관리체계가 후퇴하게 될 것이다. 적용 범위 조항(안 제3조)에서도 문언상 변경은 있지만 실질적 변화는 없다. 민간기록물 관리 확대로 비칠 수 있지만, 실질은 여전히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민간기록물에 한정하고 있을 뿐이며, 국외기록물 범위도 불명확하다. 그런데도 법명을 국가기록물법으로 개정하려 한다. “국가”라는 단어를 포함하면 법률과 기관의 격이 상승한다고 보는 것은 관료제적 내지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실질적인 목적과 적용 범위의 확대 없는 법명 개정은 오히려 행정상 엄청난 낭비를 초래할 뿐이다.
2. 행정 편의주의적 공공기록물법 개정을 반대한다.
공공기록물법은 공공기관의 투명하고 책임 있는 행정을 구현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2006년 개정되었다. 투명 행정과 알 권리 보장을 위해서는 기록을 누락 없이 생산하고 안전하게 보존해야 한다. 그럼에도 개정안은 기록관 설치 대상 기관을 축소하고, 박물류를 장기간 원형 보존이 가능한 물건으로 제한하며, 교육기관의 간행물·박물류·시청각 기록물을 자체 관리 대상으로 삼고, 기록관의 역할을 제한하는 등 국가기록원 중심의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을 대거 담고 있다. 이는 국가기록원 입장에서 부담스럽거나 골칫거리였던 기록물을 관리 대상에서 제외하고 선별적으로 관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행정 편의를 우선시하겠다는 의도이다. 본 개정안은 국민을 위한 공공기록물법이 아니라 행정안전부와 국가기록원을 위한 법안에 가깝다. 따라서 정부는 공공기록물법의 본래 목적을 훼손하는 법 개정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3. 기록관리 독립성과 전문성 훼손이 명확한 공공기록물법 개정을 반대한다.
개정안의 또 다른 문제는 국가기록원의 독립성과 전문성의 훼손이다. 국가기록원은 행정안전부의 소속기관이지만 국가기록관리의 정책과 집행을 담당하는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이다. 그러나 개정안에서는‘기록물관리종합계획 수립 권한’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부여하고 그 과정에서 국가기록원의 역할을 무시함으로써 국가기록원의 전문성과 위상을 격하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기록물관리에 관한 지도·감독 및 평가’라는 국가기록원의 업무마저 축소하여 국가기록관리 전문기관인 국가기록원을 단순 행정기관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지난 20여 년 동안 기록공동체가 국가기록원의 전문성과 독립성 확보를 위해 쏟아온 노력과 결실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처사이며, 국가기록관리의 미래를 간과하면서 과거로 회귀하려고 하는 시도이다. 국가기록원은 전문성을 갖춘 중앙기록물관리기관으로서의 위상에 걸맞은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안을 즉시 철회해야 한다.
4. 독단적인 법률 개정을 반대한다.
공공기록물법은 국가기록원 기관 운영을 위한 법이 아니라 국가기록관리체계 전체와 그 구성인 각종 기록물관리기관과 기록공동체, 나아가 국민 전체를 위한 법이다. 그동안 국가기록원은 공공기록물법의 주요 사항이 개정될 때마다 기록공동체와 국민에게 개정 취지를 설명해 왔다. 그러나 국가기록원은 이번 법률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국회에 제출된 지금까지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으며, 개정 이유를 알 수 없는 형식적인 자료만 제출하고 있다. 또한 공청회, 설명회 등도 진행하지 않은 채 기록공동체의 반대의견을 철저하게 묵살하고 있다. 국가기록원은 누구를 위한 법 개정인지 다시 생각하여야 하며 무리한 법 개정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5. 기록관리 현안을 우선 해결하고 미래지향적이고 근본적인 법률 개정을 다시 추진하라.
2025년 벽두를 맞이하여 공공기록관리에서 가장 시급한 사안은 ‘12.3 비상계엄’으로 법률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특히 ‘속기록 또는 녹음기록 생산의무 회의 지정 제도’와 ‘폐기 금지 제도’를 제대로 작동시키고 관련 제도의 미비점을 정비·개선하는 일이다. 국민은 국무회의 기록관리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 폐기 금지가 발동되지 않는 데 의아해하고 있다. 실질적인 기록물 점검을 해야 하고 제도도 보완해야 한다. 나아가 법률 개정에는 2006년 전부개정 이후 지금까지 누적된 기록관리 절차상의 문제점을 집대성한 개정 수요가 포함돼야 한다. 또한 디지털기록 중심으로 기록관리를 전면 전환하고 보존에 그치지 않고 기록물의 생산에서부터 기록관리를 시작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그때 가서 필요하다면 법명도 개정하면 될 것이기에 기록관리 현안부터 우선 개정하고 미래지향적이고 근본적인 법률 개정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
이번 개정안은 실질적인 개정보다는 형식적 개정을 취하였기에 행정 낭비이다. 개정 추진과정에서는 국가기록원 이외의 전국의 기록물관리기관과 기록인이 배제되었고 제대로 된 설명 문건조차 없다. 그리고 국가기록원에서조차 전문적 검토와 의견 수렴이 없었다는 평가 또한 부정하기 어렵기에 독단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개정안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기록관리단체협의회와 기록공동체는 다시 한번 개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며, 국가기록원이 즉시 개정안을 철회하기를 요구한다. 또한 국가기록원 내 전문직 또한 개정안 철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호소한다. 마지막으로 기록공동체와 시민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국가기록관리의 미래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법률 개정을 다시 추진하기를 강력히 요구한다.
2025년 1월 6일
기록관리단체협의회
(사)한국국가기록연구원
한국기록학회
한국기록관리학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사)한국기록전문가협회
문화융복합아카이빙연구소
한국 기록과 정보·문화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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